지난 2015년 3월 9일 애플이 발표한 새로운 맥북은 그동안 맥북 에어의 레티나 모델을 기대했던 애플 팬들을 -좋은 의미로- 완전히 배신해버렸습니다. 12인치 디스플레이에 높이가 더 낮아진 키보드, 포스터치 트랙패드 등으로 무장한 새로운 포터블 맥이 탄생했기 때문이죠. 애플은 왜 맥북 에어의 레티나 모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라인으로 출시했을까요?
<12인치 신형 맥북 >
애플은 12인치 맥북을 통해 Mac 역사상 가장 가벼운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오랜만에 프로, 에어, 미니 등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순수한 맥북(MacBook)입니다. 2006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던 기존의 맥북은 상위 라인이었던 맥북 프로(MacBook Pro)의 저가형 모델이었고, 이것은 이전 아이북(iBook)과 파워북(PowerBook) 시절부터 두 라인으로 유지되어 온 것과 동일합니다.
물론 2008년 맥북 에어가 출시되며 포터블 맥은 맥북, 맥북 에어, 맥북 프로로 3가지 라인이 되었지만, 맥북 에어의 위치가 초기 비즈니스 사용자를 위한 프리미엄 울트라북에서 맥북 프로 아래의 엔트리 모델로 이동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맥북 시리즈는 맥북 에어가 맥북을 대체하며 에어와 프로 두 라인으로만 구성되었습니다.
<맥북 에어>
실로 몇 년 만에 아무 수식어도 붙지 않은 맥북이 출시되었습니다. 지금 맥북의 위치를 보자면 초기 맥북 에어와 비슷합니다. 포스터치와 레티나 디스플레이, 최신 규격의 USB 3.1 등을 채용하고 휴대성을 최대한 강조했는데,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성능만 놓고 본다면 가격은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물론 350만 원에 이르렀던 초기 맥북 에어와 비교하면...)
그동안 포터블 맥의 성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맥북 에어는 출시 초기와 비교했을 때 비약적인 성능 향상이 있었고 이제는 일반적인 용도라면 맥북 프로와 비교해도 성능 차이를 크게 느끼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오히려 화면 해상도, 배터리, 무게 등 성능보다는 사용 행태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고려해서 에어와 프로 모델을 선택하는 사용자도 많아졌습니다. 맥북 에어라면 일반적인 인터넷이나 오피스, 이동이 중요한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고 맥북 프로는 데스크톱을 대체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이동이 필요한 사용자들이 주 타겟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맥북은 어떤 사용자를 타겟으로 할까요?
잘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맥북 포지션?
새로운 맥북은 뭔가 어중간해 보입니다. 맥북 에어보다 성능은 낮은데 가장 저렴한 Mac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출시된 맥은 그 포지셔닝이 분명했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포터블 맥 제품에 대한 타겟을 전문가와 일반 사용자로 구분하고 맥 역시 전문적 용도와 일반 사용자를 위한 용도 두 가지 라인만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12인치 맥북은 누구를 위한 제품일까요? 제품 제원만 보면 맥북 에어 아래에 있지만, 가격만 보면 맥북 프로에 필적합니다. 좀 애매한 듯 보이지만, 솔직히 애플이 어떤 세그먼트에도 속하지 않는 제품군을 만들어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OS X과 iOS의 연결고리
맥북은 Mac과 iOS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제3의 존재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OS X 매버릭스 이후부터 애플은 OS X과 iOS를 연동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Mac과 iOS 기기 사이의 갭은 존재하는데 새로운 맥북은 이 격차를 줄이는 시도로 보입니다.
<신형 맥북의 USB-C 포트>
사실 새로운 맥북이 OS X을 탑재하고 Mac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 성격이 맥북 에어보다는 iPad 에어 2에 더 가깝습니다. 유선 포트를 하나의 USB-C에 몰아넣은 맥북은 마치 iOS 기기와 유사합니다. 구멍이라고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USB-C와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전부입니다. 맥북 사양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왔던 비판은 하나의 USB 포트로 충전과 액세서리 연결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 교환은 대부분 무선으로 해결하고 집 안이 아니라면 충전하면서 사용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iOS 기기는 무선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용자가 납득하든 말든 새로운 맥북도 iOS 기기와 마찬가지로 무선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포트를 여닫는 방식의 초기 맥북 에어>
초기 맥북 에어의 경우 전원선을 제외하고 단 세 개의 포트만 탑재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세대를 거듭하며 포트는 늘어났는데 무선 사용을 전제로 하는 포터블 맥은 아마 이때부터 고려하고 있었고, 특히 지금 맥북처럼 2개의 포트만 제공해서 대놓고 무선으로 쓰세요! 라고 하는 것은 향후 컴퓨팅의 표준 사용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생각은 기존 애플 액세서리를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많은 애플 액세서리와 서비스는 무선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스템 백업을 위한 타임캡슐입니다. 매 한 시간 무선으로 Mac의 모든 데이터를 백업합니다. 또한, 아이폰 역시 이제는 케이블을 연결해서 백업하지 않고 Wi-Fi를 통한 아이클라우드 백업이 대세입니다. 심지어 파일 교환도 에어드롭이면 USB나 외장 하드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기기는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써도 됩니다.
음악과 영상은 어떨까요? 신형 맥북은 맥북 에어와 마찬가지로 광출력을 지원하지 않고 USB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같이 상시 접속이 필요한 주변 기기의 이용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어플레이(AirPlay)를 지원하는 오디오 기기를 사용하거나 Apple TV, 에어포트 익스프레스를 통해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광 디지털로 연결해서 무선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오디오 사용 방식은 iOS 기기와 동일합니다.
게다가 애플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영상 출력을 위한 신형 맥북의 디스플레이 어댑터보다 Apple TV 가격이 더 저렴합니다. 케이블을 연결할 거면 Apple TV 사서 무선으로 보라는 건가요?
<USB-C 디스플레이 어댑터 가격 $79>
<Apple TV 가격 $69>
현재 애플에서 출시하는 모든 기기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단일 기기만 쓸 경우 100% 활용할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애플이 Mac만 만들 때와는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Mac만 쓰거나 아이폰만 쓰거나 하는 사용자는 기기를 90% 정도만 활용할 수 있지만, 여러 기기를 사용하면 100%가 아닌 120%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 기기들을 함께 사용하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죠.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아이폰에서 찍은 사진은 iCloud나 사진 스트림을 이용하여 OS X의 사진 앱에 동기화됩니다. iCloud 저장 공간을 결제해서 크게 쓰는 사용자라면 분명 편합니다. 동기화나 이동 같은 거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새로운 맥북의 포지션
앞서 언급했지만, 유선 인터페이스를 하나의 USB-C 포트에 몰아넣은 새로운 맥북은 iOS 기기와 흡사합니다. 모양이 비슷한 게 아니고 iOS 기기처럼 무선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부분이 흡사합니다. 아마도 애플은 각종 케이블을 덕지덕지 달고 쓰는 것을 이젠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선 사용은 초기의 맥북 에어에서 시도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엔 이를 뒷받침해줄 액세서리와 서비스가 부족했고 배터리 성능도 현재의 절반밖에 안 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실패 아닌 실패가 맥북 에어의 포지션을 프리미엄 비지니스 모델에서 추가 포트를 달고 엔트리 모델로 이동하게끔 하는 데 약간의 힘을 보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형 맥북의 세 가지 색상>
새로운 맥북 에어가 기존 Mac보다 iPad 에어 2에 더 가깝다는 것은 색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골드 색상은 단순하게 마케팅 측면이라기 보기엔 어렵습니다. 애플은 긴 시간을 들여 Mac과 iOS 기기와의 연계를 운영체제 차원에서 강화하고 iCloud 서비스를 통해 완성 단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전의 Mobile Me, 혹은 닷맥(.Mac)과 같은 애플의 가입형 온라인 서비스를 써왔던 사용자라면 iCloud가 얼마나 대단하고 편리한지 실감할 것입니다.
<Mobile Me>
어찌 보면 iOS 기기를 연상시키는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골드 세 가지 색상은 단순 마케팅 차원을 넘어 신형 맥북이 Mac과 iOS 기기의 중간적 위치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이건 너무 앞서갔나 모르겠네요.)
신형 맥북을 통해 보는 노트북의 미래
Mac을 오래 써왔던 사용자는 IMF 시절 출시된 아이맥(iMac)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시 일반적이었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누구보다 가장 먼저 제거했습니다. 비난이란 비난은 모두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컴퓨터에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지금이야 당연시 여겨지는 USB 포트의 경우도 가장 먼저 채용했습니다.
<1998년 출시된 iMac>
애플 팬들이 외치는 '혁신'이라는 것, 혹은 뭔가 한발 앞서 나가는 듯한 이미지는 단순한 제품 디자인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제조사에서는 할 수 없는 다음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거나 라이프 표준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신형 맥북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신형 맥북이 출시되고 나서 이를 다룬 수많은 기사를 보면 기존의 노트북이나 맥북과 비교를 하고 그 성능을 다루고 있지만, 신형 맥북에 담겨 있는 '다음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이해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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